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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4 11:51
[사도행전] 사도행전 강해(153)
 글쓴이 : 축복샘
조회 : 1,286  
본문/행13:44-46
제목/사도행전 강해(153)-유대인들의 비방, 두 사도의 책망

(44)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45)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46)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4절/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이 말씀을 더 잘 번역하면
“그 다음 안식일에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거의 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들었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와서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는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떠나갔고, 어떤 유대인들과 많은 이방인들이 그 복음을 더 듣기 원해 그들의 제자가 되어 함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도가 정성을 다해 이들을 가르친 결과 불과 한 주 만에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거의 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단 두 사람이 어떤 특별한 이적이나 기적을 나타낸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주간동안 열심히 복음을 증거한 것뿐인데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복음을 통한 성령의 감화감동의 역사가 얼마나 불같이 번지는가를 보여줍니다. 복음은 이토록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두 사도가 말씀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가감없이, 끊임없이 복음을 열심히 전파함으로써 나타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무리들이 몰려왔을 때는 공적인 설교를 했고, 적은 무리들이 모였을 때는 사적으로 강론을 했습니다. 이 두 사도는 그 한 주간동안 사람이 많든 적든 밤낮으로 전력을 다해 복음을 증거했고 그때마다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런 것을 확실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해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이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 유대인들을 제외하고는 조상대대로 극심하게 우상을 섬겨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눈과 귀와 마음의 문을 여시고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증거되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은 특별한 것임을 충분히 깨닫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의 유대인들보다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성도들도 바로 이런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한반도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반만 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조상들은 조상대대로 어느 민족 못지않게 우상을 섬겨왔습니다. 이 민족의 영혼이야말로 깜깜하고 깊이 잠들고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 중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과 우리에게 성령께서는 영혼의 눈과 귀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복음을 들을 때에 그것을 예사롭게 넘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했으며 복음을 확실히 알고 믿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개벽보다 더 큰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이방민족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 놀라운 은총을 잊지 말아야 하며 날마다 감사감격하며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열심을 다해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두 사도에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하셨습니다. 즉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전도자들에게 붙여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 두 사도들을 한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원근각처로 가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또한 성도가 말씀과 믿음과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 선물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 앞에 있던 비시디아 안디옥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처럼 우리가 추수할 곡식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을 볼 때에는 그들이 도무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을 것 같이 여겨지지만 주님은 우리 주변에 때가 되어 거두어들일 곡식들을 미리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이들이 죽기 전에 복음을 듣고 구원 얻을 자들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전도자들은 오늘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오늘 복음을 듣고 내일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자라면 죽기 전에 누구를 통해서든지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시겠지만 우리 전도자들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오늘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할 자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내일 죽을 자는 아니지만 이 땅에 남을 시간이 얼마나 남지 않아 오늘 나를 통해 복음을 듣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선한 열매가 되어야 할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과 전도자들은 복음은 서둘러 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추수할 곡식은 서둘러 추수해야 하듯이 때가 늦기 전에 구원할 자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들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구원을 얻게 되겠지만 내가 나서면 얼마든지 나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원얻을 것인데 그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과 전도자들은 “다음에 하겠다”,“아직은 때가 아니다”,“무엇이 갖추어지면 하겠다”하며 잔머리를 굴리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직도 나의 영혼이 이 거룩한 명령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45절/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  방하거늘

이 말씀을 더 잘 번역하면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심에 불타 바울이 말한 것을 반대하면서 욕을 해대었다”입니다.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광경을 봤다 했습니다. 그들은 시기심에 불탔고 바울이 말한 것을 반대하고 욕을 해댔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적극적인 반대의 태도로 변합니다. 즉 이들은 복음을 멸시하고 싫어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들으려 하는 자를 보면 분이 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본다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복음을 멸시하고 싫어하는 사탄이 나타내는 반응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던 유대인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고 종노릇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바로 이런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에서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사탄이 주는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사탄의 반응을 그대로 나타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 전의 모든 사람들은 사탄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사탄과 그 악한 영들이 이미 그들 안에 들어가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이성이 있지만 그 이성을 품고 있는 영혼이 사탄에 의해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해짐으로써 그 이성마저 사탄의 감성으로 오염됩니다. 그리고 사탄이 작용하는 대로 감정을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 사탄과 악령들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로잡혀 지배당하고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사탄의 반대세력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들이 그들에게 복음과 말씀을 들려줄 때에 비로소 이런 사실들을 발견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의 사람들이 불신자나 우상숭배자들에게 복음과 말씀을 전하는 것은 이들이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것을 알게 하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과 말씀에 의하지 않고는 사탄과 악한 영들, 그리고 그들의 세계를 분명하게 밝혀줄 수 없습니다. 복음과 말씀은 이 모든 어둠과 거짓을 밝히고 드러내는 빛입니다. 이 빛을 보고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진정한 생명과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복음의 빛을 받아들이고 생명의 길로 나가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복음과 말씀을 싫어하고 멸시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복음과 말씀의 빛을 비춰주려고 할 때 그들의 한결같은 첫 반응은 싫어하는 것과 멸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로잡고 있는 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에게 계속하여 복음과 말씀의 빛을 비출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인 줄 알게 되며 사탄과 악령들의 정체를 서서히 발견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이들에게 복음과 말씀을 증거할 때 그 복음과 말씀은 저들의 부패한 심령골수를 쪼개는 성령의 좌우의 날선 검이 됩니다. 그 검은 악한 영들이 결코 막을 수 없는 무서운 칼이 됩니다. 결국 그들은 계속하여 그들을 공격하는 복음과 말씀의 칼에 의해 도망가고, 그들이 사로잡고 있던 사람들은 그 사탄의 굴레에서 해방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말씀은 한 번 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탄과 악령들이 물러가며 그것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회개하고 주께로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악한 영들에게 극심하게 사로잡혀 있던 그 유대인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염려하며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은 자들 모두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점점 더 노골적이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와 복음에 대해 비난하고 반대하고 방해합니다. 심지어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리에까지 내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이런 극심한 반대도 당한다는 것을 알고 복음에 대한 이 피할 수 없는 저항에 대해 우리 모든 복음전파자들은 그것을 끝까지 견디고 이길 만한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이 저항을 이겨낼 수 없을 때도 변함없이 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가감하지 않고, 담대하고 분명하게 책망할 것을 책망하고 전할 것을 전할 수 있으려면 단지 인간의 담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반드시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한 초대교회의 전도자들과 같이 말씀과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멸시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복음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자들은 그 앞에 하늘 문이 활짝 열려 있을지라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남들이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하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은총인 복음을 거부한 죄에 더하여 그것을 싫어하고 멸시한 죄를 첨가하고, 심지어 그것을 받아들이고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을 미워하고 방해하는 죄, 그리고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려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죄까지 저지르는 자들이므로 이들은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져서도 가장 무서운 형벌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을 볼 때 그들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의 어떤 악한 사람들보다도 가장 무서운 형벌을 영원히 당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46절/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  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 말씀을 더 잘 번역하면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먼저 전파해야만 했다. 그러나 너희는 그 말씀을 배척하고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인정해버리니 우리가 이제 이방인에게로 간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말했다”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들도 유대인들이 비위를 상하지 않으며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원해서 여러  말로 조심스럽게 깨우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담대하게 말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진리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이렇게 때가 되면 사자처럼 용감해야 합니다. 그들은 뱀처럼 지혜롭기도 하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하는 동시에 그 복음을 듣는 자들이 끝까지 그것을 거부하고 배척한다면 사자와 같이 용감하게 이제 그들에게 임할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만 대해서도 안 되며, 끝까지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자인 주님의 대언자로서 용감하게 그들에게 주어질 불행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비방과 방해가 잠잠해졌다 하여 복음의 결과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전파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영원한 행복이 주어지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끝까지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불행과 무서운 형벌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 또한 말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을 확실히 알고 있으며 또 복음을 받아들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결과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적들이 아무리 악하게 대들고 방해할지라도 진정한 복음전파자들은 결코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주눅 들거나 비굴하게 처신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복음전파자들은 반드시 말씀과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주님의 명령대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은총의 복음을 전한 다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정당한 이유를 말합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약속에 주어졌고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들이요, 또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먼저 보냄을 받은 너희에게 먼저 전하는 것이 마땅하도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전파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라”고 하신 것은 유대인에게서 시작하여 다른 지방으로 가라는 거룩한 주님의 뜻에 의한 명령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에 복음도 그들에게 먼저 주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7절의 말씀처럼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녀라도 아버지가 주는 것을 끝내 거부하면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한 데 대해 그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선언합니다. “너희가 복음을 스스로 버렸다. 너희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대적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선민이요, 특별하게 은총을 베푸셨던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복음을 끝까지 거절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복음을 취하여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여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해버렸음을 사도들은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다음과 같은 뜻에서 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도다. 너희는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너희는 아버지께서 너희들의 영생을 맡기신 분의 손에서 그것을 받기를 거절하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너희가 그리스도와 복음을 거절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절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졌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참으로 엄청난 선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사도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책임을 벗게 되었다고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책임을 사도들에게서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복음 앞에서 행한 행위가 영구히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을 분리시키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복음을 전해 들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함으로 이방인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결코 불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어리석은 짓을 했고 엄청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서 사도들은 무할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너희에게 영생이 전해졌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너희가 받아들이지 않는 그 영생을 이방인들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런 선언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보다 먼저 복음의 은총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것을 얻을 이방인들에게로 가게 된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결혼식에 먼저 초빙을 받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그 결혼식은 반드시 복된 자리가 되어야 하므로 큰 길과 모퉁이에 서서 누구든지 참석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초청하여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이 선포야말로 우리 같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것인지 모릅니다. 이 선포에 의해 아시아의 가장 끝자리에 있는 이 한반도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유대인들이 얻지 못한 영생구원을 우리가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우리 오른쪽, 왼쪽, 지구 정 반대쪽까지 가서라도 이 세상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구원 얻을 한 사람까지 구원하기 위해 중단없이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는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한 것처럼 그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의 바통이 우리에게 이어졌음을 명심하고 우리는 땅끝에 있는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들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바울과 바나바의 뒤를 이은 복음전파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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